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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3·1운동 직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하여 선포한 임시정부.
상하이 임시정부
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1919년 4월 18일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다. 7월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소앙을 파견하여 한국독립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임시정부 내의 구미위원부는 미국 국회에 한국 문제를 상정시키고 1921년 워싱턴에서 개막된 태평양회의에서 한국국민의 상황을 세계여론에 알렸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자 1944년 프랑스·폴란드·소련 정부는 주중대사관을 통해 임시정부의 승인을 통고하였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다시 확인되었다.

1920년 상하이에 육군무관학교·비행사양성소·간호학교 등을 세워 군사를 양성하는 한편 중국 군관학교에 군인을 파견하여 교육시키고 만주에 있는 독립군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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