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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암 이태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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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암 이태준에 대하여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1914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로 이동학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운반하고 의열단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몽골에 만연해 있던 질병을 퇴치하여 몽골정부로 부터 에르덴 오치르 훈장을 받았다. 1921년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당하였고 1990년 우리 정부는 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이태준 선생이 몽골에서 활동한 이유는?

 일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몽골로 근거지를 옮겨 비밀군관학교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거점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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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울란 바토르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중, 

1918년 9월 우사 김규식 선생이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 참석에 필요한 여비를 마련키 위해 몽골로 잠시 오자 그에게 독립운동 관련 자금 2천원을 제공하여 활동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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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선생이 세운 '동의의국'이란 이름은?

 이태준은 몽골 고륜에 '항일독립운동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병원'이라는 의미로 '동의의국(同義醫局)'을 개업했다. 동의의국은 중국에서 몽골을 거쳐 러시아로 이동하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항일독립지사들이 숙식을 해결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이태준의 병원에서 몇 개월 간 머물렀던 전 광복회장 이강훈 옹은 하루에도 40~50명 되는 항일지사들이 머물곤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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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자금 운송에 가담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으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 운반 과정에서  1921년 2월초 몽골을 침범하여 폭압정치를 실시한 러시아 백위파 대장 로만 스테른(Roman von Ungern-Sternberg, 1886년 ~ 1921년) 부대에게 학살된다. 향년 39세의 아까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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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국가보훈처

MISSION.독립운동자금을 획득하라. 

대암 이태준 선생이 독립운동자금 2천원을 제공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참석을 도운 인물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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