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제주인들은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제주 지역에서의 항일 운동은 조천면의 1919년 제주 3·1 운동으로 최고조에 달하였다.
조천리 출신의 휘문 고등 보통학교 학생이었던 김장환은 서울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삼촌 김시범, 김시은 등과 의논하여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김장환, 김시범, 김시은 등은 1919년 3월 21일 조천 미밋 동산에 모여서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행진에 돌입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는 함덕리, 신촌리 등 조천면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02
1920년대
1920년대 제주 지역의 청년들은 민중 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였다.
각종 수양회·흥학회 등의 청년단체를 조직하여 대중을 계몽하였다.
제주 지역 청년 운동의 선구자였던 김명식·고순흠·김문준 등 세 사람은 모두 북제주군 조천읍이 배출한 인물들이었다.


03
1930 ~1945년대
1930년대로 접어들자 제주 지역에서의 항일 운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 시기 운동의 특징은 주로 청년·학생층에 의해 주도되었다.
1930년대 최고 절정을 이루었던 항일 운동으로 해녀 항쟁이 있었다. 해녀 항쟁은 1931년부터 1932년 초까지 구좌면·성산면의 6개 마을 해녀들이 해녀조합의 횡포에 저항하여 일본인 제주도사를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1930~1945년대
해녀 항쟁에는 1만 7000여 명이 참여하였고, 검거된 사람만도 100여 명에 이르는 제주 지역 최대의 항일 운동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여성 운동이며 어민 투쟁이었다.
해녀 항쟁 이후 청년 일부가 흩어져 있던 운동가들을 규합하여 한림과 애월, 조천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제주항일운동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흔적과 저항 정신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2년 1월 제주시 구좌읍과 성산읍, 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이 운동은 여성들이 주도한 유일한 여성항일운동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당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해녀들의 2차 집결지인 이곳에 해녀 항일 운동 정신을 기리고자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