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대세를 보라.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의 독립 역시 가까이에 존재한다. 다음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만족할 만한 일은 멀지 않았다.”
아일랜드인 사업가였던 조지 루이스 쇼가 한 말입니다. 그는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운영한 무역회사(이륭양행)는 임시정부 교통국의 거점이었고, 무기·자금·서류 등을 운송하고 보관해 주는 비밀기지였습니다.
1919년 4월, 김구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상하이로 넘어가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계가 삼엄하여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 조지 루이스 쇼는 이륭양행을 이용하여 선박을 조선에 보내 김구를 무사히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일본 경찰이 멈추라고 하였지만 경계선을 넘어설때까지 무작정 몰아 무사히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각종 임시정부 요원들이 이륭양행의 배를 이용하여 상하이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이후에 의열단을 도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총독부 등 식민기관들을 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배를 통해 폭탄 등 수하물을 안전하게 가져오고 의열단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의열단이 김상옥, 김익상 등의 인물들을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0년 7월 조지 루이스 쇼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독립운동을 멈추었어야 했습니다.
조지 루이스 쇼, 그는 아일랜드 인이고 영국 국적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조지 루이스 쇼 구금 소식에 논란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대사는 '영국 언론이 난리가 났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회자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조지 루이스 쇼를 구금하는 대신 이륭양행의 파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1932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사이, 일본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이륭양행을 1935년 매도시키게 함으로써 조지 루이스 쇼의 독립운동은 마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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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도 주민분들. 독립운동을 위ㅐ 힘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