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조선의 독립을 위해 최재형은 무장 투쟁의 정신상 지주이자 자금원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최재형은 국외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를 세우고 총장으로 취임했다.
동의회는 최재형이 내놓은 13,000루블, 이위종의 부친이 전해온 10,000루블, 최재형과 안중근이 모금한 6,000루블을 기금으로, 6월 총대장 이범윤에 안중근을 참모 중장으로 한 연추 의병을 창설했다.
연추 의병은 7월부터 국내의 홍범도부대 등과 연합작전을 펼쳐 접경 지역의 일본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한국 강제 병합 이후 러시아는 항일 운동을 더욱 강하게 탄압했고 〈대동공보〉도 폐지되었다. 당시 연해주는 망명한 독립 지사의 집결지였는데 최재형은 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최대 한인 단체인 권업회를 꾸리게 된다. 이 권업회는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를 출범하며 국외에서 가장 먼저 정부 조직을 꾸린 단체가 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치루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일본의 동맹국이 되면서 결국 권업회는 해산되고 만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본의 요구로 인해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고 결국 1916년 7월 최재형은 러시아 당국에게 체포되어 우수리스크로 압송된다. 다행히 우수리크스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그의 첫째 사위의 덕을 보며 석방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