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스크린샷 2024-05-13 105350.png

​멕시코 MEXICO

 "애니깽"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애니깽들이 멕시코에서 항일 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멕시코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이끌던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산하 메리다지방회가 사용하던 국민회관, 한인들이 집단적으로 생활하던 시틴캅첸 농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I'm a Coreano

We are proud Koreans!

About

애니깽

 애니깽은 선인장을 의미하는 말로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를 칭하는 표현입니다.

 1905년 1,033명의 한국인이 ‘지상낙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멕시코로 떠났지만 멕시코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상낙원이 아니라 선인장의 일종인 애니깽 재배 농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예와 같은 처참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에 힘을 보태고자 돈을 모아 독립 자금을 후원하였습니다.

All About 김익주

 1905년 32세의 나이로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이주한 김익주(1873 ~ 1955) 애니깽 재배 농장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익주는 농장에서 나와 식당과 회사를 경영해 사업가로 큰 돈을 벌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에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멕시코 한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3.1 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 한인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하나로 결집하는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1920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1,500달러의 거금을 독립운동에 지원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와 사업 등 전 재산을 처분해 미국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와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후원하였습니다. 김익주는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보낸 뒤 정작 자신과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1955년 8월 11일 81세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한 김익주.

100년 전 멕시코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 후손들은 지금도 멕시코에서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