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Full Story
About 독립운동자금
독립운동자금. 어떻게 모였는가?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자유를 위해 한민족은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간도 15만원 탈취 사건
독립 운동 자금을 마련한 보편적인 방법은 현금 마차 탈취였다.우편을 통해 돈을 옮기는 일이 흔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중 유명한 사건은 철혈광복단의 간도 15만원 탈취 사건이다.
1920년 1월 4일 일제가 조선은행에서 간도까지 15만원을 수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철혈광복단은 당시 블라디보스톡의 무기 시장에서 '소총 한 자루와 탄환 100발'을 세트로 30원에 구매한다.
좌측의 사진 인물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최봉설, 김하서 등 현금을 싣고 가던 마차를 습격해 무장 호송대를 사살하고, 철궤에 담긴 지폐 15만원을 탈취해 독립 운동 자금으로 사용한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던
여성 모금 활동
"우리 부녀들도 남자들처럼 독립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조선 각도에 지부를 설치하고 널리 회원을 모집하여 전국 부녀들이 독립을 위해 전력함이 어떠합니까?"
일제 강점기,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김마리아 여사가 한 말이다.
1919년 5월부터 3개월간 회비로 747원을 모금해 300원 정도를 임시정부로 보내었다. 11월에는 군자금으로 2천원을 보낼 수 있었다.


고된 노동으로 독립을 위한
자금 마련-대한인국민회
1920년 미주 지역에는 약 1만명에 달하는 교민들이 살고 있었고 '대한인국민회' 같은 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속적으로 모금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자금은 8만 5천 달러. 이 금액은 오늘날의 가치로 18억원에 해당한다.
하와이에서 결성된 '대조선국민군단'은 파인애플 농장을 운영하며 약 2만2천 달러를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에 지원하였다. 대한부인구제회는 1920년에서 1930년 기간 동안 만주 일대 독립군 세력과 임시정부에 약 20만 달러를 후원하였다. 북미대한인국민회는 1940년대 충칭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4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3.1 운동의 중심이었던 종교계
천도교는 1918년 중앙대교당을 지을 목적으로 100만원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건물을 짓는데 27만원, 나머지 자금은 3.1 운동과 해외 독립운동에 사용되었다. 중앙대교당은 오늘날 인사동에 남아있다.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은 천도교 교조 손병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3.1운동을 위한 자금 5천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은 민족 대표, 독립운동가들의 여행 경비, 독립선언문 배포 비용, 잡혀 들어간 독립운동가들의 가족 생계비로도 쓰였다.

축하합니다.
독립운동자금 오만원을 획득하였습니다.